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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포토

5. 18 광주 기획단, 광주 방문 포토스케치

:차차 2012. 5. 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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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 광주 기획단, 광주 방문 포토스케치]


교과서와 종종 아버지 군인시절의 이야기로 접한 광주, 

그곳에 우연찮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총학생회에서 5. 18 광주기획단을 꾸리기에 편집위 위원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이 버스 아자씨 너무 친절하셨었어요 ㅠㅠㅠ 고마웠습니다 ㅠㅠ 행사 늦어지는 것도 감내하시고, 아침에 일찍 가야하는 저희 배려해주신 거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광주, 신묘역 도착. 광주에는 신묘역과 구묘역이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항쟁(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갈게요.


  박정희 유신체제 시절, 자유의 억압과 지속적인 저임금 정책 등으로 억눌려온 국민들이 1979년 10. 26 사태 이후 강한 민주화를 갈망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런 시기에 12. 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대한 반발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는데, 언론을 장악하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을 체포 감금하며 국회 마비 및 대학휴교령, 비상계엄확대 등으로 많은 지역의 반발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광주 전남대 100여명의 학생들은 교문출입을 막는 공수부대에게 항의했고, 공수부대가 이들을 폭행하면서 충돌이 커졌고, 신속한 진압을 원했던 군부에 의해 추가 병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이러한 계엄군의 만행이 하루만에 광주 전체에 알려지고,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학생 시위에 동참하여 본격적인 항쟁으로 번졌습니다. 열흘간 진행되었던 이 운동은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을 낳고 무력 종결되었습니다. 당시 진압경찰 및 군인 중 사망자는 경찰 4명, 군인 22명으로, 이들은 1980년 6월 21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안장되었습니다.·18민주유공자 유족회와 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 4개 단체가 공식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명, 상이후 사망추정자는 376명 등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 위키백과 "5.18광주민주화운동" 참고



광주민주화운동추모탑 앞입니다.

앞에 여대 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네요.

이 탑은, 새로운 생명, 부활을 상징합니다.








신묘역에서 의의가 큰 몇 사람의 묘를 둘러 보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OST이기도 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티브가 된 주인공들의 묘에서 설명을 들을 쯤, 추모탑앞에서 울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저만치서 들려옵니다.


이제, 구묘역으로 갑니다.




구묘역으로 가는 길, 헌수기념비가 보입니다.

헌수 기념비 아래쪽에는 헌수에 참여한 단체와 개인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일부 이름은 스크래치가 가있기도 했습니다^^..





구묘역으로 가는 길, 

광주를 기억하는 시와 글들이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상 깊은 글이 보였습니다.

광주 항쟁 당시, 이미 전두환 정권에 언론 장악되어 공정보도를 하지 않았던,

광주MBC와 광주KBS는 광주 시민들의 분노에 의해 불탔습니다.

그와 반면에 전남매일 기자들은 신문에 당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제대로 싣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 사직을 결의했습니다.



구묘역 도착







5. 18 광주 민중항쟁 이후 담양에 방문한 전두환이 방문 기념으로 만들었던 비석.


구묘역 초입 부분에 전두환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시 담양의 한 마을에민박을 한 기념으로 새워놓고 갔는데, 어떤 청년이 그것을 부수어 구묘역 입구 부근에 누여 놓았습니다. 

묘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밟고 가라는 뜻이었답니다.



87년 당시 전두환정권에 반대하다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연세대학생 故 이한열 열사



묘역 방문을 마치고, 이윽고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을 필두로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부산대, 전남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중앙대, 국민대 등등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군요.

행진 대열이은근 길었습니다.

이 행진은 교통경찰의 안내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아주 평화적으로. 횡단보도 신호 지켜가면서요.





당시 거리 시위가 활발했던, 금난로에 진입했습니다.



기타 치면서 행진, "우리 하나 되어",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불렀습니다.



행진 끝에는 개념찬 콘서트 '바람'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의미가 담긴 콘서트인데,

뜨거운 감자, 옥상달빛, 김제동, YB가 왔죠.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분분해서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공연을 보았습니다.


김제동씨 30~40분 정도 떠들다 가셨는데, 

정말 재밌게 들었습니다 ㅎㅎ



옥상달빛의 공연.



YB 출현!




YB의 무대는 상상 초월. 라이브 대단합니다. 앵콜로만 15분 하시고 가신듯...

중간에 김제동씨 와가지고 춤추고 ㅋㅋ

팔을 하도 많이 흔들어서 팔이 저리네요 ;;;

앵콜이 길어서였는지 예정보다 늦게 버스에 도착했습니다. 기사님 죄송죄송ㅜㅠ


참, 그러고 보니 잘 곳이....

원래 머물기로 했던 곳이 며칠전에 불타버렸고, 전남대 강의실에서 자려고 했으나 펑크, 결국 담양에서 숙소를 구했답니다. 으엏. 전남대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ㅠㅜㅠ...

그러고 숙소에 도착하니 거의 12시... 다른 분들하고도 많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시간이 별로 없었네요 ㅠㅠ...

일정 더 참여 못하고

중간에 일찍 출발해야 되서 무진장 죄송했답니다 ㅠㅠㅠ

잠도 못자고 05:20AM 기차 탑승!




  광주에서의 학살과 항쟁을 교과서로만 보기보다는 최소 한 번쯤은 방문해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보았으면 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부분은 지극히 작은 부분입니다. 80년 이후, 87년 6월 항쟁, 이후로도 정당한 것을 요구했던 시민들은 공권력으로부터 죽어나갔고, 공권력의 폭력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입니다.


  내가 5.18 당시 광주의 한 대학생, 한 시민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라는 물음이 듭니다.

  또,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종교가 있는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종종 몇몇 시위나 운동에 동참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는 현재의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사회는 이미 지극히 보수적으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진보라고 불리는 것은 으레 '빨갱이' 혹은 '종북'에 비유되고, 무서운 것이나 험한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시됩니다.


  합리적 보수라는 것은, 정말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고, 국민들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현재의 보수정당뿐만 아니라 몇몇 정당들이 정말 안보와 국민들의 안위를 위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1%와 자신들의 기득권과 재산에 더 신경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신 못차리는 자칭 진보정당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현재의 보수가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떠나서 이미 언급했듯, 현 한국은 너무나 우편향적이어서 국민으로서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을 요구를 하기만 해도 욕을 먹고,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그러면 애들이 어려서부터 데모꾼으로 자라나게 될까 우려스럽다는 식의 반응을 많이 봅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교육공공성 강화, 건강한 소를 먹을 권리 등)은 국민이 사람답게 살아가게 한다는 차원에서 당연히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지켜줘야 할 권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걸 요구하는 걸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의 한국에서는 이것이 진보적으로 구분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네요.



그래요. 그런데.. 이제 할 말이 안떠오르므로 ㅠㅠ

저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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